몇 개월간 사진을 찍지 않다가 오랜만에 사진기를 들었다. 뭔가를 찍고 싶은 게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사진을 찍는지, 어떤 생각으로 사진을 찍는지 궁금해서 서점에 들러 요새 나오는 출판물을 보다가 나왔다. 별다른 걸 찾지는 못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골목을 걸었다. 그러다 교회에서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나무들이 보였다. 이미 겨울이 찾아온 베를린의 나무들은 가지만 앙상했다. 깨진 거울 같기도 하고 폭발하는 혈관 같았다. 피가 거꾸로 솟고 폭죽처럼 터졌다. 콘크리트 벽의 드러난 철사 구조물은 코브라 같기도 했고 벽 틈새에서 자라는 가지는 새의 다리 같기도 했다. 모두들 나를 잡아먹으려고 각을 재는 것 같았다. 지하철의 계단들은 거대한 강판 같아서 내 몸이 치즈처럼 사방팔방으로 갈려 나가는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