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한국 38

춘천

답답해서 급 결정한 여행. 용산에서 기차를 타고 한시간 정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남춘천에 도착했다. 춘천은 6년 전 군입대를 위해 102보충대에 가기 위해 잠시 들렸던 곳있다. 기분이 이상할 줄 알았지만 별 느낌 없었다. 강원도, 특히 군생활을 보낸 양구와 나를 양구로 보낸 춘천은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벌써 그 시절이 그리운 걸 보면 삶이 퍽 즐겁지 않나보다.아무런 정보없이 와서 그냥 근처 식당에서 닭갈비를 먹고 근처 하천을 산책했다. 물 위로 햇살이 내리쬐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사람들 구경 좀 하다가 춘천 엠비씨로 자리를 옮겼다. 공원이 잘 조성됐고 거기서 내려다보는 호수가 끝내줬다. 친구가 자연을 좋아하면 늙은거라던데 정말 그런가보다. 월요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을을 느끼고 있었다. 그 사람..

도망친/한국 2017.11.08

써울

하늘이 정말 깨끗하고 좋았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충무로에 가서 필름도 맡길 겸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752번 버스를 타고 도로 위의 사람, 차, 간판, 그리고 모두를 덮고 있는 하늘을 감상했다. 모두가 아름다웠다. 버스를 쭉 타고 가려다가 중간에 한강대교에서 내렸다. 오늘이 아니면 여기에 언제 또 오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모든게 평온해보였다. 대교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운전자들도. 오늘 날씨가 이렇게 좋았구나, 별거 있나, 이렇게 좋으면 됐지.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채웠다. 한강대교에서 걸어서 충무로까지 가기로 했다. 햇살이 꽤 뜨거웠다. 머리카락이 없어서 더 뜨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뜨거움 속에 오고 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따사로움이 있었다. 역시 마..

도망친/한국 2017.09.15 (8)

서울

익숙한 언어를 마주하는 매일이 편하고 고맙지만 나의 존재마저도 낯설던 그 때가 그립다.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잘 지냈는데 오늘 하늘 가득 엉켜있는 먼지를 보고있으니 이제야 실감난다. 서울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보내는 토요일, 일면식도 없는 분의 결혼식을 다녀오고(어머니의 부탁으로 반주까지 해버렸다) 혜화에서 연극 한 편, 뮤지컬 한 편을 관람하고 낙산공원에 다녀왔다. 올림픽대교 강변역, 익숙했지만 이제는 낯선 곳 그로테스크: 상식을 기대하는 일이 기적이 된 이상하고 기분나쁜 오늘날 >모델구인

도망친/한국 2017.09.10

용산행

"00:27분에 용산으로 가는 무궁화호 1412 열차를 이용할 고객께서는..." 행선지와 시간을 안내해주는 방송이 텅 빈 플랫폼에 고요하게 울렸다. 여름과 가을 그 어느 사이에 있는 계절의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플랫폼에는 계절에 옷을 맞추지 못하는 내가 홀로 서 있었다. 어떤 친근함의 가까움도 없는 소통, 이웃이 아니라 그저 연결만 남아있는 교환, 걱정과 고통이 없는 좋아요에 지쳐 스스로 혼자가 된 내가 서 있었다. 많은 것을 보고 듣지만, 정작 그들의 언어와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눈에 담긴 어려움을 볼 수 없는 나에게 실망한 내가 서 있었다. 나를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어 가두고 그 안에서 스스로 완전한 안락함을 느끼고 있는 내가 보였다. 아무도 없는 기차역에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나만 중요한 내..

도망친/한국 2017.09.05 (4)

지금은 서울

같이 콩나물 국밥을 먹고,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책도 사고, 수다 떨다가 웃기도 하고 화도 내고, 도시를 산책하고, 집회 현장에도 다녀오고. 쌀을 씻고, 김치를 썰고, 찌개를 끓이고,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도 돌리고, 과일을 깎고, 차를 마시고, 안부 인사도 나누고.걱정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절망하고, 희망을 찾고, 다시 힘내고, 다짐하고.때와 장소에 맞게 사는 법도 중요하지만, 때와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사는 법도 중요함을 깨닫는다.

도망친/한국 2016.12.31

사당, 서울시립미술관

사당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박성원 작가님의 '유리조형' 전시를 다녀왔다. 사당에 살면서 지나치기만 하고 처음 가봤다!유리로 공예품을 만드는 것은 전에 홋카이도로 여행을 갔을 때 본적이 있다. 유리를 뜨거운 불에 녹여서 형태를 만들어 아기자기한 것들을 만드는 것을 흥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이번 전시도 그와 비슷했다. 우리 삶에 가까이 있지만, 쉽게 예술작품으로 대하지 못했던 유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조각으로 재해석한 박성원 작가님의 전시는 흥미로웠다.생소한 전시였지만 전시 작품들 속에서 한 사람으로써의 고민의 흔적과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남다른 패션 감각도!특히 인상깊었던 전시는 유리 얼굴에 나무 몸을 한 자화상 시리즈였다. 나무는 깎아내야 하는 고체적인 조각이지만, 유리는..

도망친/한국 2016.06.23

안면도

뜬금없이 차를 렌트해서 안면도에 다녀왔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해대교를 건너서.처음에는 행담도 휴게소에서 바다를 보면서 멍때리다 오려고 했건만, 시간이 불가하였다..ㅜㅜ아웃렛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새벽 12시부터 5시까지 문을 닫아서 차량이 진입할 수가 없었다.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나올수가 없다는게...그래서 안면도로 목적지를 변경했다.서울에 비해 많이 시골이었다. 신호등도 점멸상태였고, 그렇게 많던 편의점도 찾기 힘들었다.거기서 찾은 세븐일레븐에서 먹은 라면과 만두는 잊지 못할 맛이었다.밤이라서 바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시간에 그 공간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비가 와서 그런지 바다 바람은 많이 차가웠다. 안그래도 차가운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졌다. 차가운 공기를 녹이던 그 시절은 어..

도망친/한국 2016.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