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조각, 결 184

부유

계절에 따라 비가 땅에 스며 올라오는 냄새가 다르다. 봄비는 새싹들이 올라오는 땅의 냄새, 꽃 냄새가 새로 시작하는 느낌을 준다. 지난 겨울이 말끔이 씻는 느낌이기도 하다. 여름비는 풀과 나뭇잎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냄새도 짙어진다. 가을비는 낙엽 냄새와 나무 냄새가 한기와 섞여 오묘한 감정을 일으키고 겨울비는 언 땅위에 스미는 냄새가 많이 쓸쓸하다. 비냄새를 유독 좋아하는 나와 달리 너는 니가 좋아하는 빗소리가 있었는데 오늘은 그게 너무 서글픈지 떨어지는 저 빗방울처럼 너를 떠올리는 밤도 언젠가 떠내려갈까

꿈, 조각, 결 202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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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을 정도로 좋아했던 사람을 좋아하지 않게 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처음 좋아한다고 느꼈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굉장히 낯설겠지. 슬프기도 할테고. 좋아하는 일을 여러 이유에서 좋아할 수 없게 됐을 때 낯선 거리에서 갑자기 미아가 된 것처럼 불안한 기분이었다.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향한 열정, 패기는 현실에 파묻히고 도전할 용기도 없다. 엄마가 들으면 코웃음치겠지만 나이가 무기인 시절은 지났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돈은 없고 건강도 나쁘다. 일상의 작은 부분도, 어설프게라도, 성공하지 못하는 나는 얼마나 망가졌을까. 망가지지 않은 원래 상태라는게 있기는 할까? 자연적 신체는 해체할 수 있다는 데리다의 글에 크게 공감한다. 우리의 신체는 결코 유기적이고 기원적인 자연성을 가져본 적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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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방금 전까지 즐거웠다. 흥겨운 왈츠 풍 재즈에 샤워 후 마시는 맥주 창 너머 보이는 기분 좋은 살랑임 당신의 환한 미소가 날 기분 좋게 했다. 그런데 방심했다. 바르트의 표현으로 기분이 즐거워진 방심 상태였다. 나는 지금 슬퍼해야 한다. 슬퍼 마땅하다. 그런데 잠시 슬픔에서 잠시 벗어났다. 내 주위에 매몰되어 즐거운 일탈에 빠져 슬픔 상태를 벗어나게 될 때 마음 한 구석에서 고개들고 눈을 마주칠 때야 알게 되는 쳐드는 그 감정이다. 그녀는 이제 없다. 나는 그를 잃었는데 잃었다기보다 내가 상처로 옷 입혀 떠났는데 웃고 떠들고 춤춘다.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오히려 더 즐겁다는 듯이. 이런 모습이 낯설고 이게 나를 또, 더욱 더 슬퍼지게 한다. 내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그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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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블로그에 들어왔다. 영화 후아유가 생각나서 OST 델리스파이스 차우차우를 듣다가 묘하게 뒤섞인 여러 감정에 이끌려 노트북을 켰다. 기타 반주에 맞춰 연주를 추는 너의 몸짓과 목소리가 주위를 맴돈다. 그리고 지금은 조승우가 부르는 서른 즈음에를 듣는 중. 매일 반복되는 이별이 지친다. 다시 차우차우를 듣는다. 애인이 카메라를 파는게 오빠에게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녀에게 자신의 손을 스스로 자르는 느낌이라고 말해줬다. 그녀는 나에게 카메라를 팔지 마라고 했다. 말하는 눈이 슬퍼보였다. 카메라는 다 처분하거나 넘겨줬다. 죽은 친구의 영혼이 담긴 카메라를 돈으로 바꿨다. 그 돈으로 다른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기로 했다. 사진은 앞으로 조금만 찍기로 했다. 이제 천천히 지금까지 찍..

영원한 바다

누구도 아직 알지 못하는 너의 모습을 기억해 온종일 너만 바라본 그 바다에서 포근한 모래 위로 가만히 너는 내 옆에 누워 미처 여미지 못한 생각들을 들려줬어 아 품에 다 안을 수 없는 아 너만이 나의 유일한 진실 영원히 반짝이고 싶어 꿈만 같은 순간 속 너와 음 가슴속에 새겨지던 그 눈빛과 기약 없이 하루를 쓸어 담는 파도와 영원히 반짝이고 싶어 꿈만 같은 순간 속 너와 영원히 사라지고 싶어 시리도록 선명한 바다 ,선인장

꿈, 조각, 결 2020.01.20 (1)

완벽히 낯선 타인에게

괜찮다고 하셔서 정말로 답장해요. 저처럼 A님께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여럿 있겠죠. 그 글들을 소화하시기에 벅차면 어쩌나 고민했지만 즐겁게 읽어주시리라 생각하고 적어요. 처음 인사드리죠, 안녕하세요. 저는 0입니다. 곧 서른을 앞두고 있고(만 나이로 하면 아직 어리다는 사실을 알아주세요.), 20대의 마지막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고 싶어 한국보다 7시간이 느린 독일에서 지내고 있어요. 유학을 명분으로 나와있지만 도피에 가까워요. 20대를 똑같이 반복하며 마무리하기 싫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그냥 남들처럼 ‘머물렀어야 했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스스로를 잉여인간이라고 느낄 때가 많거든요. 독일에서 저는 거의 무직이라고 해도 될 만큼, 프리랜서의 삶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벌이지만 사진찍는 일을 하고 있어요..

꿈, 조각, 결 2019.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