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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조각, 결/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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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붉은 태양을 품은 드넓은 하늘은 왁자지껄한 땅과는 달리 고요했다. 1초, 2초 빨갛게 타들어가는 노을을 보며 모두들 어린 소년처럼 신나했지만 유독 너만은 더 차분해보였다. 너의 눈은 무엇을 보내는 눈이었다. 오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회, 집, 법원, 시장 사이로 몸을 숨기는 해였을까. 즐거움, 억압, 슬픔, 분노, 고통을 띄운 우리 앞에 흐르는 작은 개울물이었을까.
we were happy 처음 안았을 때부터 난 깨달았지 똑똑히 두 사람의 심장에는 온도 차이가 있단 사실을 진심이면 충분하던 예쁜 시절은 지나고 나로 돌아와 미안하단 얘기도 미안하기만 한 나로 두 뺨으로 흘러내려 뾰족하게 얼어붙은 앙금들이 침묵을 찔러 또다시 차가워진 손을 뻗어 떨다 파래진 입술로 말해 그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도 놓지 않아 이 계절이 추운 것은 태양이 멀어서가 아냐 봄이 없는 나라로부터 부는 바람 때문이야 "머금다가 뱉어버려 소금물처럼" 그렇게 말했었지만 이 실험이 끝나면 더 갈 곳이 없어 내겐 폭풍 치는 언덕에서 먼 곳으로 외치듯이 간절하게 고백을 전해 슬픔의 행복을 택한 그대가 나는 자랑스럽다고 그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도 놓지 않아 언젠가 두 심장의 온도가 만나게 될 거야 비참만이 참이었던 날들 너머..
남산 Leica M7, 50mm, 포트라800 그냥 갑자기 남산을 오르고 싶어졌다. (필름을 인화하고 사진들을 보면서 왜 남산이었을까 생각해보니 떠나기로 결정하고 나서 추억이 묻은 곳들을 다시 느끼고 싶었나보다.) 약속도 없이 불쑥 친구를 보러 갔다. 누군가에게 뜬금없이 전화를 걸었다. 요새 그냥, 갑자기 어딘가가 가고 싶고 누군가가 보고싶고 그렇다. 어느 날 불쑥 친구를 찾아가기도 하고, 전화를 걸기도 한다. 참 즉흥적이다. 뭔가 이유는 있는데 그 원인이 참 불문명할 때 ‘그냥’이라는 말을 쓴다. 그냥, 여기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무엇을 위해서라는 정확한 까닭도 없다. 그런데 이 그냥이라는 말이 담아주는 가볍고 단순하고 헛헛하면서도 유유자적한 이 말, 그러면서 따뜻함을 남겨주는 이 말이 참 좋다. 언제부..
月下堂, 舍堂洞 ​ 그리운 공간, 동네. 새로 이사간 곳에 아직 마음을 못 붙여서 그런지 더욱 그립다. 무엇보다 사람이 제일 그립다. 홀로 있는 걸 좋아하지만 가끔 편하게 불러도 나와주는 사람들이 이 동네에는 있었는데, 새로 관계를 쌓아가기가 어렵다. 이러다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인가보다. 지나간 시간만 그리워하는.
온도차
경계 ​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에게 또 용서를 구한다. 광운대, 청량리, 창동 행 열차를 보내면서.
안테나 날이 갈 수록 옛 것이 그립다. 안테나를 이리 저리 움직이던 나와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비디오 방에 가서 선명하지 않아도 여운이 긴 영화들을 빌려보고 싶은 밤.
사진과 내용은 무관합니다 “나는 무엇일까? 슬픔이 무너져 내리고 괴로운 일들이 밤새 머리를 괴롭혀. 시도 때도 없이 허무가 나를 발 끝까지 끌어내린다? 설 기운조차 없어서 벽에 기대 흐느끼는 하루가 벌써 수 개월 째야.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는데, 이제는 그냥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인생살이가 의미없이 부는 바람만 같아. 나는 그냥 그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리는 갈대는 아닐까?” 민혜는 500을 한 잔 더 주문했다. 그리고는 다시 깊은 침묵 속에 잠겼다. “나,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누군가와 비교해서라도 기운을 얻으라고, 힘내라고 어떤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입을 다물고 묵묵히 맥주를 마셨다. 누가 봐도 밝고 긍정적이어서 모두가 잘 지내는 줄로 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