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저장소 811

흘러가지않고싶은데

흘러간다 바람을 타고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시린 마음 가녀린 손 끝 옷깃을 세우고 흘러간다 지난날 나에게 거친 풍랑 같던 낯선 풍경들이 저만치 스치네 바람이 부는 대로 난 떠나가네 나의 꿈이 항해하는 곳 흘러간다. 헤엄치지 않고, 둘러보지 않고, 흘러간다 속살 같은 물길을 따라 시간의 방향을 흘러간다 두리번 둘러봐도 끝없는 바다 위 비교할 이, 시기할 이 없는 곳 바람이 닿는 곳, 그 어딘가에 나의 꿈이, 나의 바람이, 나의 사랑하는 이 향해 가는 곳 흘러간다. 바람을 타고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는 척 눈물을 닦네

꿈, 조각, 결 2021.01.09 (1)

그라나다 8일

말라가와 그라나다를 두고 오래 고민했다. 말라가는 론다도 갈 수 있고 무엇보다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을 볼 수 있고 그라나다는 알함브라의 궁전을 볼 수 있다. 결국은 버스로 세 시간가량을 달려서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버스비는 편도 50유로 정도 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본 설산이 멋졌다. 후지산을 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났다. 숙소에 짐을 놓고 나왔다. 그라나다에서는 술을 시키면 타파스를 무료로 제공해서 타파스 투어도 많이 다닌다고 한다. 낮부터 사람들이 타파스에 스프리츠(띤또)를 먹고 있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가격이 매우 저렴해서 놀랐다. 궁전은 내일 보기로 하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사람들 구경도 하고 도시 전망도 봤다. 이슬람 양식이 도시 곳곳에 녹아져 있었다. 아라베스크 장..

도망친/스페인 2021.01.09

세비야 8일

떠나는 날 태양을 보고 싶었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안개가 껴서 더 깜깜했다. 연휴인 건지 출근 시간이 늦은 건지 거리가 정말 조용했다. 문 닫은 가게, 보이지 않는 사람, 텅 빈 도시. 그 속에 혼자라고 착각하고 돌아다니는 나. 금새 날이 밝고 사람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지만, 잠시 동안은 조용히 산책할 수 있었다. 내 바닥의 끝은 어디일까. 더 아래로, 더 깊이 파고든다. 바닥의 바닥의 바닥의 바닥. 거기서 한번 더 내려가 그 아래 또 바닥. 얼마나 더 깊이 내려가야 끝이 있을지 도저히 감이 안온다.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아프게 할 수 있을까. 타인을 갈기갈기 찢을 권리가 내게 있는 건가. 내 행복과 선택이 왜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 죽음으로 모든게 끝날까.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끝..

도망친/스페인 2021.01.08 (1)

MoMA x Vans

우연히 반스 공홈을 들어가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정말 너무 갖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그 중 최고는 모마랑 콜라보한 것들 중에 뭉크콜렉숀... 50프로 할인에 추가로 10프로 더 할인돼서 싸게 살 수 있지만... 구매를 하지는 않았다. 유혹이 상당히 강했지만 선뜻 사지 않은걸 보면 또 그렇게 갖고 싶은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중에 후회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날이 있을 수 있기에 바로 저장!

꿈, 조각, 결 2021.01.08

비소비

필수 지출을 제외하고 소비를 일절 하지 않는 것. 비소비를 하는 이유는 그냥...하고 싶어서...? 딱히 이유가 없다. 자본주의가 싫기도 하고 지구도 아프고 절대적 돈이 없기도 하고 일은 하기 싫고 많은 짐들이 버겁고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소비로 내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다. 만족의 레벨이 꽉 찾다랄까. 그래서 다시 결핍을 느끼거나 비소비가 질리면 소비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12월을 돌이켜보면 예상하지 못한 소비가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친구네 집을 방문하면서 깜짝 산타?를 하게 돼서 10유로 정도의 지출이 오버됐다. 12월을 바탕으로 다시 필수 지출을 생각해봤는데 딱히 추가하지 않고 그대로 가도 될 듯하다. 락다운의 영향이 있었을 수도..

꿈, 조각, 결 2021.01.07 (2)

Spandauer D.103 + 645

- 작은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발콘에서 바라봤다. 지난 인사들은 울음을 많이 참았는데 이번 작별은 오히려 덤덤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안 들기도 했지만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추억이 완성된 느낌이었다. 액자 속의 우리는 오래 빛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얘기했던 대로 한국이나 미국에서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끝이 계속 유예되고 있다. 2주간의 소란스러운 선물이 끝났다. 살을 부대끼며 북적북적이던 작은 방도 이제는 넓어졌다.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대신 다시 적막과 고요를 되찾았다. 이불 커버를 돌려놓고 낮잠을 자다가 유투브도 보다가 책을 읽었다. 오롯이 혼자였다. 내가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말로 할 수 없이 좋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결론을 냈다. 나는 스..

살아온/독일 2021.01.06

제목없음

떠돌다 계속 가만히 있지를 못하다 그 어디에도 맘을 붙이지 못하다 세상 어디에도 받아줄 곳이 없는 그러다 베를린 땅에 등을 기대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의미없는 글자들을 끄적거리고 흔적도 없이 흩어지는 거리를 찍는 일 붙잡으려 무던히 애쓰지만 손을 움켜쥐어도 잡을 수 있는 건 가져본 적 없는 무에 대한 그리움 무한히 떠돌고 떠돌다 잠시 이 세상에 생명으로 살아가 다시 끝없이 팽창하는 죽음으로 돌아가다 잠시 잠깐 베를린에 머물다 떠나다 잠시 잠깐 내 맘에 머물다 떠나다 생명으로 스쳐 지나다

제목없음

가려운 등을 긁는다 엉덩이 위로 각질이 떨어져 나간다 언제 만들어진지 알 수도 없는 사과수박호두쌀감자양파마늘땅콩복숭아옥수수시금치양배추달걀 나의 어제들 나의 모든 나뭇잎들 흙들 공기들 너들 그들 소금처럼 설탕처럼 밀가루처럼 흩어진다 모래위에 살포시 가라앉는다 자기를 잊지 말라며 꼭꼭 숨는다 그러리라고 절대 잊지 않겠다고 꼭 찾겠다고 약속을 하고 파도에게 내어준다 아픔인지 미련인지 후회인지 알 수 없는 하얀 것들이 반짝인다

Spandauer D.103 + 640

- 아직 2020년도 적응하지 못했는데 2021년이 됐다. 어쩌면 태어나서 하루도 삶에 적응하지 못한건 아닐까. 아무래도 좋다. 이제는 내 달력이 어디까지 넘겨질지 궁금하지 않다. 언제부턴가 나의 거취가 제일 궁금하다. 여전히 목적지를 결정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디로 흘러갈까. 최근에 비자카드를 잃어버렸다. 재발급을 받을 생각은 없다. 이리저리 방황하다 떠돌다 어딘가에서 흩어지면 좋겠다. - 친구들과 바다에서 새해를 맞고 차박을 했다. 독일에서는 처음으로 카운트다운을 경험했다. 소소하게 터지는 폭죽을 보며 앞으로 다시는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구름이 많아 일출은 볼 수 없었다. 바다 사진을 몇 장 찍어왔다. - 텅 빈 도시 텅 빈 바다 텅 빈 하늘 보이는 모든 것이 비어있다. 종 갈매기 파도의..

살아온/독일 2021.01.0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