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독일

Spandauer Damm 103 + 616

박찬익 2020. 12. 8. 23:04

비가 멈추고 해가 다시 떴다. 노을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주황빛 하늘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독일에서 치과는 처음이라 꽤 긴장하고 떨렸는데 하늘을 보며 잠시 심호흡을 했다. 진료카드를 작성하는데 모두 독일어로 있어서 당황했다. 알 수 없는 병, 약의 이름들이 써있었다. 대충 아니오로 다 답했다. 진료도 독일어로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국어를 하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4시 15분 예약이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5시 정도에 진료를 받았다. 선생님은 왜 이제야 왔어요 다 치료하려면 오래 걸리겠어요 하시며 짧은 대화를 이어갔고 나는 그냥 단명하려고 그런다며 멋쩍게 웃었다. 아직 젊은데 그러다 진짜 그렇게 된다며 마취를 했다. 신경치료는 꽤 걸리기 때문에 다음 주에 예약을 잡아주고 치료를 시작했다. 세균이 이를 갉아먹는 행위와 의사가 이를 깎는 행위가 뭐가 다른지 생각하다가 치료가 끝났다. 이러나 저러나 어차피 내 어금니는 없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연어를 사서 된장국에 넣어 저녁을 먹고 잤다.

오늘은 눈이 일찍 떠졌다. 어두웠다. 해가 뜰 때 시간을 보니까 8시 38분이었다. 일만 안하면 시계따위는 필요하지 않을텐데 생각했다. 날씨가 좋아보여서 공원을 뛰었다. 나무와 물에 둘러싸여있는 기분이 좋았다. 높게 솟은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비췄다. 쌀쌀함과 따스함이 교차했다. 머리가 쭈뼛서고 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쓰러진 나무를 딛고 왜가리처럼 보이는 새가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박제된 새처럼 오랫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무엇을 그렇게 보는지 궁금했다. 새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다. 다시 달렸다. 왼편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해의 반영이 눈부셨다. 뭉크의 달 그림자처럼 해가 길게 내려와있었다. 마치 백야에 공원을 뛰는 기분이었다. 시계가 없던 시절에 살던 인류는 하루종일 해가 떠있는 시간에 무얼 했을까 궁금했다. 왠지 제발트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이 공원을, 중국식 다리에 얽힌 이야기, 검은 사슴모양을 하고 있는 나무와 스코틀랜드 아저씨의 주황 수염같은 나무의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 알려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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