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조각, 결

10450

박찬익 2020. 11. 8. 03:08

많은 고민을 거듭하고 의미 없는 기록을 다시 하기로 했다. 순간에 떠오르는 대로, 뭘 지켜야 한다는 강박 없이 자유롭고 편하게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보기로 했다. 노트에 적을까 하다가 나중에 엄마나 아빠가 볼 수 있을까 그러면 나를 조금 더 이해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몇 개월을 방치했던 블로그를 좀 고쳤다.

블로그 이름도 바꾸고 닉네임도 바꿨다. 지금 나에게 어울리는건 추락 하강 소멸 죽음 침전 뭐 이런 류의 단어들이다. 마지막까지 익카루스를 고민했지만(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를 동경한다) 그냥 이름으로 닉네임을 바꿨다.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다는 말은 이제까지 솔직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덜 솔직했다는 그 벌로 나는 얼굴을 나 스스로에게, 모두에게 감췄다. 결점이 많은 내 얼굴을 도저히 창피해서 들고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감추는 걸 넘어서 지워버렸다. 눈과 코와 귀와 입이 없다. 볼 수 없고 맡을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들을 수 없다. 나는 나르시스였을 뿐이다. 물에 비친 그와 교감하려 했을 뿐이다. 그에게 빠져 그를 잡으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흐려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나를 지운 것인가? 나는 나를 만나려고 손을 내민 것이 전부였다. 나에게서 나를 뺏어가는 너는 누구인가. 너는 나를 왜 두렵고 부끄럽게 만드는가.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최초의 인간으로부터 전이된 본능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제는 솔직해질 수 있다. 나는 잘못이 없다.

오랜만에 쓰는 일기라 어색하다. 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잃어버렸다. 단어들은 나에게서 모두 빠져나가거나 흩어져 말의 소리는 흐려지고 음악의 선율에 따라 몸을 흔들던 기억만이 선명하게 추억의 끝없는 선형을 유영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스팔트가 녹아버릴만큼 뜨겁고 콘크리트 벽을 적실만큼 축축한 대만에서 기타를 퉁기던 날들이 생각난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이 세상 모든 게 압축된 듯한 느낌.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건 기타에 튕겨져 나오는 파동들 뿐이다.

U7 KONSTANZSTRA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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