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프랑스

파리 4일

박찬익 2020. 11. 8. 15:05

떠나는 아침에도 안개가 자욱했다. 차갑고 수분기 많은 공기가 날카롭고 매서웠다. 도로는 눈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결정들로 얼어있어서 미끄러웠다. 플릭스버스는 연착으로 늦게 왔다. 파리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버스 운전사는 자욱한 안개를 헤쳐 끝없는 도로를 질주했다.

파리는 해가 저물어 어두워지고 있었다. 파리 플릭스 버스 하차지점에서 숙소까지 거리가 꽤 걸려서 우버를 이용했다. 몇 유로 아끼려고 리옹역까지 걸어간 다음에. 언어에 가둘 수 없는 상황들임에도 짜증내지 않고 함께 필요 없는 고생을 하고 있는 S가 안쓰럽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퇴근 시간과 겹쳐서인지 길이 꽤 막혔다. 센 강변을 따라 줄지어 있는 파리가, 가로등에 얼핏 비치는 S의 얼굴이 예뻤다. 이 상황이 참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했다.

숙소는 에펠탑 근처에 위치한 파리의 아파트였다. 대로가 옆에 있었는데도 숙소 앞은 조용했다. 두 사람이 몇 일 머무르기에는 위치도, 집 컨디션도 좋았다. 누군가 덜 마른빨래를 널어놓은 점은 별로였지만. 유럽식 집답게 현관, 복도, 화장실이 있었고 주방과 거실이 함께, 방이 분리된 구조였다. 거실에 창이 여러 개가 있어서 좋았다. 인테리어는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컨셉이 공존하고 있어서 산만했다. 우리는 감각을 발휘해 가구 위치도 바꾸고 과한 소품들을 정리했다. 조금 손을 보니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는 집으로 변했다. 독일 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런 집이라도 파리에 살고 싶었다.

누군가가 파리는 최소 1일 1에펠이라고 그랬다. 동네가 동네이니만큼 짐을 풀고 조금 쉬다가 밤 산책을 다녀왔다. 어두워진 파리는 더 어두워졌지만 거리의 네온불빛,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마음을 조금 따뜻하게 밝혀줬다. 정시마다 반짝이는 화이트 에펠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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