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스페인

세비야 5일

박찬익 2020. 7. 16. 16:48

지난 밤 쏟아지는 별을 볼 때 까지만 해도 오늘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출발부터 꼬였다. 언제나 닥쳐서 하는 습관 때문에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기차를 놓쳤다. 급하게 택시를 탔다. 빨리 가달라고 부탁을 몇 번이나 드렸더니 엄청 빨리 가줬다. 기차 출발 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기차를 타러 가는 문은 굳게 닫혔고 직원들이 있었지만 열어주지 않았다. 너무 늦었다고 했다. 적어도 5분 전에는 와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눈 앞에서 기차를 마드리드로 보내고 다시 다른 택시를 타서 버스 터미널로 갔다. 이 기사 아저씨는 약간 덤탱이를 씌운 듯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기에 그냥 돈을 주고 호다닥 달려서 버스표를 끊고 버스를 탔다. 여기서 조금 헤맸는데 더 지체했으면 마드리드에서 세비야로 가는 기차를 놓칠 뻔 했다. 비용도 엄청 비쌌고 무엇보다 배차가 정말 적었기 때문에 무조건 타야했다.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버스에는 M과 나 둘 뿐이었다. 아침부터 지쳤는지 M은 버스에 타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바로 우버를 불렀고 빨리 가달라고 여러번 부탁드려서야 겨우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많지 않은 짐이었지만 긴장하고 신경이 곤두 서 있다보니 꽤 무겁게 느껴졌다. 땀을 꽤 많이 흘렸지만 무사히 세비야로 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 편안해졌다. 기차를 타고 네시간 정도를 갔다. 점점 내려갈 수록 창 밖의 풍경이 달라졌다. 그 때의 나는 무슨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M의 흔들리는 눈동자만이 기억날 뿐 모든게 흐린 잔상으로만 남아 머릿속을 부유한다.

세비야에 도착해 역 밖에 나온 첫 느낌은 로마와 비슷했다. 강렬한 태양, 북적이고 지저분한 느낌이지만 한 쪽으로 돌아서면 아무도 없는 듯한 공허한 느낌 가득이었다. 숙소까지는 꽤 멀었지만 M과 나는 걷는게 일상이었다. 가다가 마트에 들러 간단히 점심을 사서 먹었다. 오래 걸으니 꽤 힘들어서 중간에 쉬면서 갔다. 연말이라 그런지 낮 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가게마다 가득했다.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 다채로운 페인트색, 오렌지 나무 가로수가 신기하고 또 새로운 곳에 온 느낌을 강하게 줬다.

숙소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여행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해질녘쯤 옷을 챙겨입고 나왔다. 마드리드에 비하면 훨씬 따뜻했지만 그래도 겨울이니까 밤에는 생각보다 추웠다. 먼저 가깝고 유명한 메트로폴 파라솔을 갔다. 선셋을 보면 좋겠다 생각해서 갔는데 생각보다 줄이 길었고 입장료도 비싸서 그냥 주변만 돌러보고 골목 골목을 따라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가는 길은 어디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모든게 예쁘고 아름답고 기분이 좋았다. 날씨까지 너무 좋아서 최고였다. 주황색, 하얀색 건물들이 노을을 담아 짙어졌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색이 변할 수록 감정이 복잡해지고 오묘해졌다. 광장에 계속 머무르고 싶다가도 벗어나고 싶었고 세상에 영원히 살고 싶다가도 당장 존재하지 않았던 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세비야의 불빛들을 보면서 사진을 찍는 말고는 있는게 없었다. 아름다움은 그런게 아니었지만 사진이 전부였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지켜낼 용기와 의지가 나에게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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