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독일

[Gubenerstrasse17] + 386

박찬익 2020. 4. 22. 05:48

살림을 늘리고 싶은 욕구가 매일 솓구치지만 버린 신발과 옷들을 생각하며 아직은 잘 참고 있다. 무엇보다 언제 이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짐을 늘리면 안된다. 또 이사를 했고 근 한달만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어 집 내부를 찍었다. 오래된 집이다. 이곳 저곳이 낡고 녹슬고 망가져있다. 조금 춥기도 하고. 그렇지만 고상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가구들이 방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고, 부엌으로 아침 해가 들어오는데 그 환한 빛이 하루를 활기로 채워준다. 머물수록 더 오래 남고 싶은 욕실,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은은한 조명들, 서늘한 계단과 정원이 어느새 편하고 좋아졌다. 아무래도 오래돼서 사는 사람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는 집인데 내 집이 아니어서 내가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도 날 편하게 해준다. 그래도 고장내면 안되니까 살살 애지중지 다룬다.

소파에 누워 책을 읽다가 창 밖을 봤는데 파란 하늘과 연두 잎들이 조화를 이룬게 아름다웠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었다. 앞 집 지붕 꼭대기에 커다란 깃발이 있는데 언제나 휘황찬란하게 휘날린다.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꼭 물결치는 모습과 비슷해서 자주 보곤 한다. 오늘은 더 유난히 요동치는 것 처럼 보였다.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바람을 더 느꼈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눈이 펑펑 내리고 가지만 앙상했는데 앞 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느새 나무가 풍성해졌다. 책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매일매일 나무가 달라지는 모습을 봤는데 순식간에 자라버렸다. 나무만 변한게 아니라 내 머리도, 손톱도 꽤 자랐다. 시간을 잊고 살았는데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루프트한자가 더이상 한국행 비행기를 띄우지 않아서 아직 독일에 있다. 3월에 비행기가 취소됐을 때는 4월 19일 부터 운행한다고 해서 21일로 변경했는데 또 취소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나는 무슨 감정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게 4월 첫주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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