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마음가짐

박찬익 2015. 11. 30. 15:56


잠깐의 시간동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 자연을 느끼고 감탄할 수 있는 시간이 여행이다.

 삶에 쫓겨 외면했던 것들을 들여다보기 위해, 혹은 그 삶이 너무나 무거워 숨 쉴 여유조차 없을 때 숨구멍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공간의 변화는 새로운 모습의 '나'를 보여주기 보다 같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나'를 경험하게 해준다. 

거기서 나는 '나'에 대해 진지해지게 된다.


일본 지하철은 한국과 다르게 승무원의 운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창이 있어서 앞으로 가면서 뒤를 보면서 갈 수 있다. 

혼자 지히철을 탈 때면 항상 끝 칸에 타서 창을 통해 지나온 길을 보면서 간다. 거꾸로 간다는 것은 묘하게 두근 거리고 아련하다.


지하철은 철로를 이탈하면 사고가 난다. 자동차도 그렇고 비행기, 선박은 말할 것도 없다. 자기의 길을 잃어버리는 순간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큰 위험이 따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의 길은 정해진 길이 없다. 사람이 만든 이동수단은 끊임없이 목적지를 왔다갔다 진자운동을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무수히 펼쳐진 미로같은 삶의 길에서 쉽고 빠르게 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 이동 수단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계속해서 속도는 빨라지고, 지나치는 순간은 너무나 많다. 뜨거운 태양을 향해서 너도 나도 달리면서 밤하늘의 별이 주는 낭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래전 비둘기호가 주던 그 긴 시간이 추억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그 시간이 주던 감정은 그리워하지만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지난날의 사랑처럼...





길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사람에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른다. 군생활이 견디기 힘든 것중 하나는 모든 것이 원리와 원칙에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일주일, 한달의 계획이 정해져있고 가능하면 그대로 한다. FM으로 하는 간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삶에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은 내가 길을 가면서 얼마든지 조리있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빡빡한 사람보다 무른 사람을 좋아한다.) 경계근무를 서다가 맞닥뜨린 야생 동물이 주는 놀람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닥치는 수많은 일들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 불특정하게 찾아온다는 것은 삶에 무료함을 떨쳐준다. 

누군가에게는 적군을 만난 것처럼 긴장과 두려움, 공포의 순간일 수도 있겠고, 어떤 사람은 동물을 만난 것처럼 놀라는 정도, 그 이후에 동물을 본 신기함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군생활은 끝난다는 것이다. 그 길고 길던 시간이 끝나고 나면 그곳에서 겪던 불안, 설렘이 아무일도 아니듯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많은 일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보면 아무일도 아니게끔 무뎌지게 된다.(나의 앞에 펼쳐진 삶의 무게가 더 크기에 상대적으로 무디게끔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간답시고 무턱대고 자기 멋대로 살아간다면 신호등 없는 교차로처럼 아비규환의 상태가 될 것이다. 
여러 교통수단의 원활하고 안전한 교통정리를 위해 각각의 통제소가 있다. 다른 교통수단의 선로를 침범하지 않고, 자기의 올바른 길을 가도록 통제해주는 통제소. 
사람에게도 이런 통제소의 기능을 하는 것이 있을까? 이렇게 질문한다면 대게 그것은 윤리가 아닐까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물론 윤리도 이런 통제소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해 왔다. 
하지만 르네상스이후(지금까지도) 이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부정적인 극단의 모습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고있다. 그리고 지금의 윤리는 정해진 어떠한 명제가(참과 거짓으로 구분되는) 아니라 사회적인 통념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관념이 된 지 오래다. 
따라서 시간(시대)과 공간(문화)에 따라 상대적인 윤리는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통제소의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그 '네모'는 무엇인가? 

사람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면서부터 이것은 끊임없이 회자되고 논의되고 있다. 고대 이오니아의 철학자들은 이것을 아르케[arche]라고 하였고, 플라톤은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동자로 설명한다. 나는 이것을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이 '하나'는 세상의 모든 원리를 관통하고 올바르게 연결해주는, 그래서 올바로 작동하게 하는 근원적인 것이다. 이 '하나'를 통해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가며, 그것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삶이 언제나 장밋빛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삶은 언제나 고되고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다운 인간성이 회복될 때,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대 어깨위에 놓은짐이 너무 힘에 겨워서
길을 걷다 멈춰진 그 길가에서 마냥 울고 싶어질 때
아주 작고 약한 힘이지만 나의 손을 잡아요
따뜻함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어루만져 줄게요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때론 내가 혼자뿐이라고 느낀적이 있었죠
생각하면 그 어느 순간에서도 하늘만은 같이 있죠 
아주 작고 약한 힘이라도 내겐 큰 힘 되지요
내가 울 때 그대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에서 오는 사람들
모두 다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거죠(변진섭_1989)



아래의 사진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위에 말했듯이 사람에게만은 정해진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가야할 길이 있다. 가야하는 길은 '하나'로 세상을 바라보며 걷는 '걸음'이다. 내 눈 앞에 길이 있어도 그 길을 걷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길이다. 그래서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은 다르다."
휴가를 통해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 두려움과 설렘, 기대, 재미를 발판삼아서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하나'에 더 근접할 수 있기를 꿈꾼다. 





No Plan, Best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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