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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조각, 결/sketch

폐차


12월의 첫 사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연식도 알 수 없는(97년식 일 것 같다) 폐차 직전의 프라이드를 찍은 사진으로 골랐다. 

이 사진은 2015년 3월에 찍은 사진인데 11월 30일에 현상을 했다. 

사진을 자주 찍기도 어렵고,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는 것도 귀찮다. 

나는 주로 충무로에 있는 사진관에 현상을 맡기는데, 마침 독일어 공부를 하는 곳이 명동이다. 그래서 겸사겸사 다녀왔다. 

찍었던 시간은 꽤 지났지만, 방금 뽑은 따끈따끈한 사진이다. 이게 필름카메라의 매력인 것 같다. 

언제, 어디서 찍은지도 모르는 오래된 필름을 맡겨서 사진을 뽑는 과정이 마치 오래된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시간을 추억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처음 이 사진을 찍었을 땐, 그저 내가 매일 걷는 이 골목길과 왠지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장을 찍고보니 전봇대에 '폐차'라고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똑같아 보이지만 조금씩 미묘한 차이가 있는 네 장의 사진을 더 가지고 있다. 왠지 모를 쓸쓸함과 고됨이 전해져서 셔터를 더 눌렀다보다.

사진을 찍으며 느낀 것은 나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의 PRIDE가 폐차 직전의 위기에 닥친 현실이었다. 사실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닳고 닳은 프라이드를 폐차장으로 보냈을지도 모른다.

눈 깜짝할 순간에 변하는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 변화의 조류에 몸을 싣지 못하고 도태되거나 낙오되는 자신이 답답해 폐차 딱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

또 그런 그들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위로랍시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폐차장으로 향할 수도 있다.

애초부터 벤츠나 비엠더블유를 끌고 다녔으면 좋으련만 면허를 따기 전부터 내 차는 구닥다리 프라이드인걸 어쩌나.

차 없는 세상에 살고 싶지만, 이미 자동차의 편리함을 느껴버렸는데 그것을 포기하기가 참 쉽지 않다.

97년 프라이드 광고 CM송 처럼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은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처럼 좋은 날 나의 프라이드 좋은 사람 함께라면 생활 속에 기쁨이 피어나요 언제 어디서나 좋은 차 프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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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ui? 2016.09.28 16:04 신고

    독일 방문 준비를 오래전 부터 하셨군요! 저도 필름카메라 유저인데 반갑습니다ㅎㅎㅎ. 요샌 두 달에 한롤 찍는 것도 힘겹지만... 이상하게 애착이 엄청나서 어렸을때부터 안 놓게 되네요. 그냥 넘길뻔 한 사진인데 자세히 보니 요새 구경도 힘든 프라이드인 것도 신기하고요. ㅎㅎㅎㅎ 타국 생활 잘 하시길! 종종 구경올게요.

    • 찌개집알바생 2016.09.29 12:49 신고

      카메라 들고 다니기가 쉽지 않죠ㅠ.ㅠ 저도 이상하게 애착이 가네요. 뭐랄까 DLSR보다 소박한 매력이 있다고 해야할까요. 옛날 물건에 마음이 가더라구여. 고향같다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