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영국

인버네스 5일

박찬익 2017. 6. 28. 22:38

또 떠난다. 잠시 머무른 애버딘 역시 정겨운 도시다. 그치만 오래 머물렀다면, 이 도시를 더 알게됐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시시해졌거나 실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잠시 스쳐 지나듯이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도시를 떠난다. 맛있는 아침,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 차가운 바다, 흥 넘치는 사람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슬퍼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던 애버딘.

애버딘을 떠나 버스를 타고 네시간, 인버네스로 간다. 꽤 긴 이동시간에 지레 겁먹고 지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해본다. 버스에 타기 전 비가 살짝 내리고 바람이 분다. 축구바지를 입고 있는데 조금 춥다. 축축한 공기에 무거운 바람을 맞으니 괜히 마음이 시리다. 겨울처럼. 아마 잘못한 일들이 많아서 나로 인해 상처받은 누군가의 서글픔이 바람을 타고 이제야 전해지나보다. 어쩌면 지금도 너의 아픔이 나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버스에 올라 바깥 풍경을 보며 여행을 떠난다. 사람이 전혀 살지 않아보이는 곳에도 누군가는 내리고 제법 큰 마을에서는 아무도 타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서 미리 단정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한다. 자려고 했는데 창밖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고 여러 생각에 잠들지 못하는 사이 버스는 인버네스에 도착하고 기사님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내린다.

땅에 발을 딛고 첫 느낌. 아, 춥다. 북쪽이라서 더 춥나보다. 바람도, 사람들 옷차림도 겨울이다. 반바지는 나 뿐이다. 서둘러 숙소로 가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행인지 둘러볼 틈도 없이, 버스 정류장 옆에 숙소가 있다. 오랜만에 백패커스 호스텔에 묵는다. 여러 사람과 함께 사용하는 10인실. 그래도 취사가 가능하니 여기서는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겠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 앞에 있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흰 쌀밥에 스팸, 계란. 별거 없어보이지만 항상 먹고 싶던 음식이다. 독일에서도 분명 먹고싶고 그리울 때가 많았는데 왜 안사먹었는지 모르겠다. 이제서야 안심이 된다. 밥없이 못사는 나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이러나 저러나 한국이 좋고, 그립고. 돌아가면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 힘에 겨워도.

밥을 먹고 옷을 껴입고 방랑자 컨셉으로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돌린다. 껴입었음에도 바람을 이겨내기가, 용기가 부족하다. 누군가에게는 불어오는 향기 가득한 바람이겠지만 나에게는 맞서야 하는 바람인데, 그냥 돌아서고 싶다. 이번에는 그래야겠다. 그래서 그냥 숙소로 돌아선다. 그대가 가는 길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었으면.


PHOTO LAB.

BUS STATION.

OLD SCOTTISH MAN.

INVERNESS STREET.

NORTH CHURCH AND CASTLE.

HOUSE.

SIGN BOARD.

THE RIVER SIDE.

THE WINTER.

CITY VIEW.

THE CAFE, IN FRONT OF THE CASTLE.

NUMBER 27.

VICTORIAN MARKET.


'도망친 > 영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래스고 7일  (0) 2017.07.01
인버네스 6일  (0) 2017.06.29
인버네스 5일  (2) 2017.06.28
애버딘 4일  (2) 2017.06.27
애버딘 3일  (2) 2017.06.26
에든버러 2일  (2) 2017.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