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영국

애버딘 3일

박찬익 2017. 6. 26. 21:41

개운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침대 옆 선반에 핸드폰을 가져와 시간을 보니 7시였다. 푹 잤다고 느꼈는데 이른 시간이라서 당황했다.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잠을 더 자보려 노력했지만 이미 충분히 잠을 잤다고 판단한 내 몸은 활동하고 싶어 이곳 저곳을 쑤셨다. 성화에 못이겨 몸을 일으키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보통 나는 떠나는 날, 느즈막히 일어나서 짐을 정리하고 여유롭게 이동하려고 한다. 오늘은 에딘버러를 떠나 애버딘으로 가는 날이다. 그래서 천천히 기차역으로 가려고 했건만 너무 이른 시간에 깨버렸다. 아침부터 뭘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마지막으로 칼튼 힐에서 에딘버러의 아침을 감상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칼튼 힐이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서 가볍게 다녀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필름 카메라를 챙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왔다. 아직이라는 부사를 써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추웠다. 달리면 더울지도 몰라 춥게 입고 나왔더니 실수였다. 그래도 차가운 공기를 마시니 굳어있던 몸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 일찍이었는데도 몇몇 브런치 카페들은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북적였다. 가볍게 커피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 다이어리로 하루를 정리하는 듯 보이는 사람. 비슷한 사람들이 여러 공간에서 각자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왠지 나도 운동으로 하루를 부지런히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각자의 삶의 방식을 이러쿵 저러쿵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확실히 아침형 인간이고 싶다. 지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치열하게 뭔가를 열심히 하며 사는 삶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정답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혹은 본인만 알겠지만 나에게는 하루라는 시간이 부족해 잠을 줄여가며 공부며 일이며 연애를 했던 때가 아닐까. 그렇게 뭔가에 쫓기듯하면서 압박을 받으면서 하루를 보내야 열심히 살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독일에서 보낸 시간, 여행하며 여유를 가지는 지금이 꽃다운 청춘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이 든다.

칼튼 힐에서 마시는 공기는 더 상쾌했다. 가슴이 뻥 뚫렸다. 매일 아침을 여기서 보내면 참 좋겠다. 도시와 자연이 잘 어우러진 이 도시는 언젠가 꼭 다시 와서 살아보고 싶다.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 중에 [원 데이]가 있는데 영화의 배경지가 에딘버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더 애정이 간다. 자연 속에 파묻혀 지내고 싶은 꿈이 가득한데 조지아를 다녀오고 나서 조금 사그라들었다. 적절한 도시에서 적절한 자연과 함께 살고 싶은 소망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숙소로 돌아와 과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같은 방을 썼던 한국인 누나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사람 인연이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도 짐을 싸서 숙소를 나왔다.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벌써 정이 들었나보다. 시설은 구렸어도 안락함을 줬으니 나름 만족. 게다가 가격이 매우 저렴했기에 감사한 숙소였다. 숙소에서 웨이버리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10분도 안걸리는 거리여서 마지막으로 좀 더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강한 인상을 남겨준 에딘버러를 떠나기 아쉬웠다. 

숙소 옆에 클럽같은 바가 있는데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주말 아침에는 늦게까지 잘 법도 한데 참 부지런하다. 아침에 운동하고 돌아올 때도 이른 시간이었는데 대형 스크린에 풋볼 경기를 시청하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기차역 갈 때 보니까 더 많아졌다. 그리고 얼굴은 더 붉어졌다. 응원하는 열기도 대단했다. 에딘버러에서 만난 스코틀랜드 사람은 흥 많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기억된다.

기차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 애버딘에 도착했다. 에딘버러보다 북쪽이어서 춥겠다는 예상은 빗나갔다. 햇살도 따뜻하고 바람도 선선했다. 첫 느낌은 시골에 온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에딘버러에 있다가 와서 그랬나보다. 회색으로 꽉 찬 애버딘은 에딘버러보다 더 옛날의 느낌이 가득했다. 18세기에 살았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숙소를 기차 역 근처에 잡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숙소 옆에 있는 가게에 갔는데 스페인 식당이었다. 맛집인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들 맛있는 음식에 와인, 위스키를 곁들여 먹고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먹으려고 했지만 가격이 생각보다 많이 비쌌다. 저렴한 타파스에 작은 빠에야 한 접시를 먹고 바닷가로 갔다. 애버딘은 바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다. 기차를 타고 오는 길에 유전을 시추하는 모습들을 봤는데 이쪽 바다 근처에서 기름이 나오나보다. 시원한 바다 바람을 참 오래동안 맞았다. 아. 바다 옆에서 살아야겠다.

무슨 행렬인지는 모르겠지만 느낌 상 국가 유공자들 같았다.

다양한 연령층과 성별의 꽤 긴 행렬이 에딘버러 성으로 가고 있었다.

애버딘으로 가는 기차역으로 가던 중

에딘버러 웨이버리 역. 스코틀랜드 느낌 물씬 풍기는 남자.

안녕, 에딘버러

애버딘에 도착해서. 표를 넣어야 나올 수 있는 시스템. 어릴 때 기차타면 나올 때 표를 꼭 검사했었는데 그분들은 어디로 가셨을까.

Helllo, stranger! 낯선 이를 반겨주는 애버틴의 인사에 기분이 좋았다.

모래바람이 부는 애버딘 비치.

바다 바람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기분을 좋게 한다.

애버딘 왔다 갑니다.

아이들이 벗어 놓은 귀여운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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