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일본

교토 3일,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박찬익 2017. 1. 21. 00:48

10시에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기는 글렀다. 침대의 포근함을 좀 더 느끼고 밖으로 나왔다. 오하요우- 인사를 하고 홍차에 딸기 잼을 바른 토스트를 한 입 먹었다. 오늘은 오렌지 잼도 먹었다. 잼이 담긴 병에 오렌지 마말레이드라고 적혀있어서 자우림 노래를 들으며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물론 책도 같이 읽으면서. 지금 내가 하고픈 일은 뭘까?

등 뒤로 해가 들어온다. 오늘은 비가 온다고 해서 멀리 안가고 근처에 있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날씨가 좋다니! 아침 시간을 더 즐기다가 머리를 감고 나가기로 했다. 오늘 다녀온 곳은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인과 정지용 시인의 학교이며 시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날 좋을 때 가고 싶었는데 학교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가 내렸다. 내 마음을 대변해줬다. 사실 나도 조금 울었다. 그 감정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낮은 내가 높은 마음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둡던 시대를 비추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사실을 회기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죄송한 마음도.

두 시인을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둘을 사랑했다. 그 마음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조금은 밝게 비추는 아주 작은 별이 되기를 소망한다. 

비를 피해 학교 앞에 있는 모스버거로 들어갔다. 한국보다는 맛도 별로였고 가격도 후덜덜했다. 햄버거 하나를 주문하고 책을 읽었다. 오늘 가지고 나온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도 다른 사람보다 미친 짓을 많이 하지만, 앞으로 좀 더 미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그치고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바로 옆에 옛 궁이 있어서 그곳을 거닐었다.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메이지유신으로 도쿄로 가기 전까지 천황들이 이곳에서 생활과 업무를 봤다고 한다. 옛날에 이 넓은 곳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참 피곤했겠다는 탄식을 하며 산책을 했다. 생각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잘 살고 없는 사람들은 아직도 다른 사람의 수발을 들으며 살지는 않나 생각한다. 어쨌든 어마어마하게 컸다.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빠져나와 해 지는 교토의 거리를, 불빛이 빛나는 금요일 밤을 즐겼다.

편의점에 가서 군것질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베요리도 맛있게 먹고 작은 소품도 쇼핑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간식거리를 또 사왔다. 목욕 후에 마시는 맥주 한 캔은 별거없는 작은 공간도 천국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목욕을 하면서 내가 정말 일본에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퇴근 후에 목욕하는 일본인들을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보통 집에서 목욕하는 일본인이었지만- 직접 볼 수 있다니. 전에 삿포로 여행 할 때도 목욕탕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왜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나도 나중에 집에 꼭 욕조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집에 있어야 할 목록이 점점 늘어간다. 

뜨거운 열기로 얼굴이 빨갛게 상기돼서 살짝 어지러운 기분이 들 때까지 몸을 담그고 등골이 오싹함을 넘어 찌릿할 정도로 차가운 물로 뜨거움을 씻겨내는 일을 몇 번 반복하면 내 작은 친구가 깜짝 놀래 쪼그라든다. 이것도 목욕의 묘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특이한 사람이다.

뜨겁게 달궈진 몸에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면서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매일 가질 수 있다면.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시를 가슴에 묻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체험해보는 일, 찾아보면 일상에서도 작지만 커다란 행복을 주는 일들이 참 많다.

정차한다데스네!


도시샤 대학으로 들어가는 길에. 학교에 자전거가 참 많다.


건물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학교 분위기가 참 좋았다.


이 쪽으로는 학생들이 많이 안지나다녔는데 반대편에는 우글우글했다.


윤동주 시인의 시비 앞에서.


 41년 11월, 친필 원고라고 한다.


많은 분들이 시인을 기리는 손길들.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김현진 님이 준비해주신 방명록. 22살의 대학생의 마음이 예뻐서 감동, 그 뒤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손수 적어내려간 시인의 시들을 읽으면서 또 감동. 그들의 생각과 여행을 읽으며 오늘의 나는 어떠해야하는지. 참, 여러번 울린다.


비가 내렸는데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길 건너는 사람들. 파란색이 참 많다.


학교 앞 모스버거.


비가 내린 뒤 맑아진 하늘에 기분이 좋아서.


그림 실력이 조금만 좋으면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장면인데.


성을 빙 둘러서 달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체력단련처럼 보였다. 무슨 운동을 하는지 궁금했는데 물어보지는 않았다.


닫혀서 들어갈 수는 없는 궁.


씨크한 냥이. 눈을 계속 피했다. 내가 귀찮았나보다.


저무는 하루, 표지판과 신호등.


장난감같은 너무 귀여운 차. 


저 잡지에 있는 여성 매력있다. 일본 책들은 참 깔끔하면서 매력있다. 사고싶은 디자인이 많다고 해야하나. 저마다의 특색이 느껴진다.


지하도에서 지나가다 찍은 사진. 전광판의 코디처럼 입으면 참 예쁘겠다. 소비욕을 자극하는데 무심한 듯 지나치는 저 여성분이 부러웠다. 보여지는 것, 보고싶은 것, 볼 수밖에 없는 것 사이에서 봐야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왼쪽 끝에 아사히가 너무 귀여워서 그만.


집 앞의 바에서 슈퍼마리오를 즐기고 있는 일본인 둘. 내가 다른 사람 사진 찍는 걸 민망하고 부끄럽게 생각해서 한컷만 딱 찍고 왔는데 초점이 나갔다.


'도망친 >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35mm 교토(2)  (0) 2017.02.06
35mm 교토(1)  (8) 2017.02.05
교토 4일, こんにちは  (4) 2017.02.01
교토 3일,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4) 2017.01.21
교토 2일, いってきます  (2) 2017.01.19
교토 1일, おはよう  (6) 2017.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