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스페인

바르셀로나 1일

박찬익 2016. 11. 2. 16:40

알람이 울린다. 아침먹고 나가야하는데 이불 밖 공기가 차다. 그리고 캄캄하다. 하얀 방을 커튼이 없는 창으로 들어온 검은색이 밤새 물들여 놨다. 좀 더 누워있고 싶다. 8분 뒤, 얼른 씻으라는 알람이 다시 울린다. 네네, 이불을 걷어차고 몸을 일으킨다. 머리를 감고 옷을 입었더니 40분. 아침을 먹었다간 베를린 행 버스를 놓치게 된다. 아침먹고 가려고 일찍 일어났는데 소용없게 됐다. 대충 도시락을 만들어 가방에 넣고 핸드폰 충전기를 챙겼다. 그런데 뭔가 안 챙긴 느낌적인 느낌. 중요한데 생각나지 않는 초조함과 찝찝함을 문 앞에 남겨두고 떠난다. 여권만 있으면 되지 뭘. 


바지 속으로 들어오는 새벽공기에 다리가 움츠려든다. 버스 정류장이 집과 가까워서 정말 편하다. 시간에 맞게 갔는데 버스가 없다. 조금 쫄린다. 다행히 좀 멀찍이 사람들이 보인다. 거기에도 버스는 없길래 베를린 가세요, 한 커플에게 물었다. 응, 우리 베를린 가, 남자가 대답했다. 6시 05분 버스인데 6시 10분에 버스가 왔다. 독일인이라고 언제나 시간약속에 철저하지는 않다.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고 베를린 공항으로 출발했다.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니 조금씩 밝아진다. 해를 기대했지만, 역시나 안개가 뿌옇다. 창 밖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풍경은 길쭉하고 곧게 뻗은 나무,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자동차 라이트, 그리고 하얀색도 검은색도 회색도 아닌 색이 없는 안개. 독일 안개는 사람 피를 말린다. 해를 가려서 빛을 받을 수가 없다. 지금도 적응 안 된다. 그래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빛이 없어도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어도, 여기는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수첩에 그림도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베를린 공항이다. 터미널이 어딘지도 모르는 나는 일단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티켓팅을 했다. 라이언에어는 미리 인터넷에서 체크인도 해야하고 보딩패스도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비자체크를 받아야 하는데 처음에 나는 몰랐다가 다시 가서 받아왔다. 그런데 비자 체크를 안 해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비행기 타기 전 바코드 찍는 곳? 거기서 그냥 다 해줬다. 인생은 언제나 케바케라는 생각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생각보다 좌석도 넓고 불편하지 않았다.

예쁜 사람들은 다 비행기를 타나보다. 앞뒤좌우 다 예쁘신 여성 분들이 있다. 독일어를 할 수 있어서 좋다:) 나만의 비밀로 남겨놔야지.

베를린에서 바르셀로나까지 두시간 반 정도 비행을 한다. 수화물도 없으니까 바로 나갔다. 버스를 탈지, 전철을 탈지, 아무 것도 모르지만 발걸음 향하는 대로 갔다. 전철을 타기로 했는데 렌페도 있고 지하철도 있고 복잡하다. 몇 번 왔다갔다 한 뒤에 렌페를 타고 시내로 간다. 날이 정말 좋다. 뒤로 사라져가는 스페인의 집들을 보며 혼자 그냥 신이 나서 막 웃는다. 기차 안으로 연주하시는 아저씨들이 들어와서 아름다운 노래까지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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